소개

문선희는 우리 사회에서 잘 거론되지 않거나, 피해의 무게가 가볍게 여겨지는 일들을 탐구합니다. 그가 만든 이미지는 미니멀하고, 반복과 변주로 단정한 형식을 띠지만, 내용은 날카롭습니다. 그는 사진이라는 특수한 논증을 통해 미처 몰랐던 부분을 알리거나, 이미 알던 것들을 새롭게 보게 만들며, 통상적인 사고방식의 틈을 비집고 연민과 공감을 창조합니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파묻힌 농장 동물 매몰지 100여 곳을 기록한 <묻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80여 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지난 15년간 고공농성이 일어났던 장소들을 담아낸 <거기서 뭐 하세요>, 10년 간의 작업으로 완성한 고라니 초상 사진 연작인 <이름보다 오래된>, 비둘기의 비행을 한글 형태로 재구성한 <친애하는 구구씨>까지 – 각 시리즈는 묘사와 암시를 통해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존’의 허구성과 시스템의 모순과 부조리한 작동 방식을 드러냅니다. 그는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 작품을 만듭니다. 그의 작품에는 기록과 기억과 기도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는 약자 뒤에 선 예술가이며, 보는 이를 생각하게 만드는 조용한 질문자입니다.